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 애니메이션 (문단 편집) ==== 플라이셔 형제 ==== 이들이(맥스 플라이셔[* 그의 아들이 [[영화 감독]] [[리처드 플라이셔]].] & 데이브 플라이셔) 활동한 시기는 1910년대 말기가 애니메이션 제작의 출발점으로, 상당수 작품은 [[광란의 20년대]]에서 [[대공황]] 시기인 당대의 도시적인 배경을 하였고 [[몽환]]적이거나 [[아방가르드]]적인 면모의 [[독일어권|독일]] [[표현주의]]가 주된 기반이 되었다. 이는 1920년대 후기에 입사한 여러 애니메이터들의 아트 스타일에 어우러져 애니메이션 내부의 형상, 물체들과 캐릭터가 뒤섞이는 애니메이션(Deranged Animation)의 탄생으로 거듭났고, 많은 작품에서 기본적인 카툰형 캐릭터에 몸체가 부자연스러워지는 유연성을 결합하고 다른 [[신체변형|물체나 캐릭터로도 변형]]하는 연출이 두드러졌다. 1920년대 중기엔 미국 애니메이션 최초의 유성 영화인 [[https://en.wikipedia.org/wiki/Song_Car-Tunes|Song Car-Tunes]] 시리즈를 제작하여 음성에 맞춘 가사의 내용을 안내하는 바운싱 볼(bouncing ball) 기술을 삽입하는 시도를 진행하기도 했다. 1930년대는 [[캡 캘러웨이]], [[루이 암스트롱]] 등의 인기 [[재즈]] [[뮤지션]]이 나오는 실사 [[뮤직 비디오]]의 삽입과 [[섹드립|성적인 유머가]] 연출되는 [[베티 붑]]과 코믹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한 뽀빠이가 많은 인기를 끌던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최전성기이자 회사의 대표 캐릭터로 불려진 시기였었다. 하지만 당시 내외적인 명성이 떠오른 [[월트 디즈니]][* 월트가 본격적인 데뷔를 하기 이전에 플라이셔 형제는 본인들의 애니메이션 연출 기법과 [[로토스코핑]] 기술을 만들어낸 걸출한 제작자의 위치에 있었다. 1934년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로토스코핑 독점 권한이 만료되자 서둘러 기법을 스튜디오에 도입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제작에 활용했을 만큼 플라이셔 형제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다.]와 경쟁하여 [[걸리버 여행기]], 컬러 클래식(Color Classic) 등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활동을 지속하다, 차츰 진행된 형제 간의 대립과 1941년 'mister bug goes to town'이 실적에서 참패를 거둔 이후 이듬해(1942년) 스튜디오가 [[파라마운트 픽처스]]에 인수되면서 페이머스 스튜디오로 개명당하고 1950년대 들어선 타 회사 카툰 스튜디오와 [[하향 평준화|동일한 퀄리티로 전락해버렸다]].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로토스코핑 기법을 훗날 랄프 박시가 활용한 일도 있었고, [[배트맨 TAS]][* [[폴 디니]]를 위시한 제작자들이 1940년대에 제작된 플라이셔 스튜디오의 슈퍼맨 시리얼 애니메이션에서 직접적인 제작 동기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의 애니메이션 연출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등 후대의 애니메이션 마니아, 역사가, 애니메이터들한테 재평가를 받았다. [[68운동]]을 전후할 무렵 [[언더그라운드]] 코믹스를 그리던 로버트 크럼(Robert Crumb) 등의 일부 미국인 [[만화가]]들과 [[데즈카 오사무]]의 초기 만화 작품들,[* [[http://tezukaosamu.net/jp/mushi/201209/column.html|해당 링크 참조]], [[리본의 기사]]의 주인공 사파이어의 머리카락은 베티 붑의 머리카락 디자인에 부분적으로 영향받은 흔적들이 보인다.] [[컵헤드]], [[Bendy and the Ink Machine]]에서도 플라이셔 스튜디오 단편들에 대한 [[오마주]]가 드러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